1997년 IMF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내려앉는 세대에게 tvN 드라마 태풍상사는 단순한 복고물이 아니라 다시 꺼내 보기 힘들었던 기억을 조심스럽게 꺼내 주는 작품입니다. 저 역시 어린 시절 뉴스를 보며 한숨을 내쉬던 부모님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올라, 첫 회부터 눈을 떼지 못하고 시청했었습니다. 화려한 압구정 오렌지족 청년이 하루아침에 부도 위기의 무역회사 사장이 되어 버티고 성장하는 과정을 보며, 그 시절 어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버텼는지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아직 방영 중인 작품이라 결말은 알 수 없지만, 매주 토일 밤마다 다음 회를 기다리는 설렘이 오랜만에 찾아왔습니다.
태풍상사 줄거리
태풍상사의 기본 줄거리는 1997년 외환위기 직격탄을 맞은 무역회사가 다시 일어나는 과정을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평생 직장은 당연하다고 믿던 시기에 한순간에 위기를 맞게 되며 회사를 퇴사하게 되고, 주인공 강태풍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함께 부도 직전 회사의 대표 자리에 올라갑니다. 직원도, 돈도, 팔 것도 없는 회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어 보이지만, 그는 회사 문을 닫는 대신 거래처를 다시 찾아 다니고, 사기 같은 계약서를 정면 돌파하며 작은 신뢰부터 하나씩 다시 쌓아 나갑니다.
이 드라마가 단순한 복고 드라마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태풍상사라는 공간 안에서 각자의 사연을 안고 모인 사람들이 함께 버티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세밀하게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경리이자 영업 주임인 오미선은 숫자에 강하고 현실 감각이 뛰어난 캐릭터로, 다소 이상주의적인 강태풍의 폭주를 잡아 주는 브레이크 역할을 합니다. 두 사람은 IMF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며 동료이자 파트너로 조금씩은 로맨스로 나아가며 시청자에게도 미소와 공감을 선사합니다.
강태풍 캐릭터
강태풍 캐릭터는 드라마 초반에 압구정 나이트클럽을 주름잡던 오렌지족이자 낮에는 온실에서 장미를 연구하던 원예학 전공자로 그려집니다. 자유분방하고 철없는 청년처럼 보이지만, 아버지의 죽음과 아버지가 창립하신 회사가 위기를 맞자 도망치지 않고 태풍상사에 들어가 스스로를 사장이 아니라 직원이라고 소개하며 바닥부터 일을 배우려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외환위기로 세상이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도망치고 싶었던 제 대학 시절 취업 준비가 자연스레 떠올라, 계약서를 들고 뛰어다니는 장면마다 괜히 같이 긴장하게 되었습니다.
강태풍의 진짜 매력은 완벽한 영웅이 아니라는 점에 있습니다. 외환위기라는 시대적 무게 앞에서 가족을 지키기도 버거운 상황에 회사까지 떠안으면서 그는 수없이 휘청거립니다. 투자 제안과 무역 계약을 둘러싼 무역전쟁에서 감정적으로 대응했다가 손해를 보기도 하고, 직원들 앞에서 허세를 부리다 진실이 들통나 망신도 당합니다. 그럼에도 사과할 때는 솔직하게 고개를 숙이고, 억울한 상황에서는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끈기를 보여 줍니다.
가족사 전개
가족사 전개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태풍상사를 세운 아버지 강진영의 존재입니다. 회사는 위기에 몰려 있지만, 직원들에게 존경받던 아버지의 이름은 여전히 무게감 있게 회사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태풍은 처음엔 그 그림자가 부담스럽지만, 부도 위기 속에서도 직원 월급부터 챙기려 했던 아버지의 선택을 떠올리며 조금씩 경영 철학을 이해해 갑니다.
외환위기 한복판에서 집을 잃고 익숙했던 동네를 떠나며 강태풍과 엄마는 생활의 기반을 모두 잃어버립니다. 특히 어머니 정정미가 아들의 선택을 끝까지 믿어 주려 노력하는 장면을 보면서 저 역시 힘든 시기에 등을 토닥여 주던 가족이 떠올라 여러 번 울컥했습니다. 믿어주는 가족이 있다는 건 참으로 든든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엄마와 함께 오미선의 집으로 가서 살게 되는데, 그 안에서의 또 관계를 맺어 가기도 합니다. 오미선은 치매에 걸리신 할머니와 여동생 1명, 어린 남동생 1명과 함께 삽니다. 어머니 정정미는 엄마없이 자란 그들을 따뜻하게 엄마처럼 대해주며 가족애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런 다양한 가정환경과 관계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지곤 합니다.
IMF 시대배경
IMF 시대배경을 다룬 작품은 많지만, 이 드라마는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나타냅니다. 삐삐와 공중전화, 도트 프린터와 팩스, 강남의 네온사인까지 화면 가득 90년대 후반의 이미지가 펼쳐집니다. 뉴스 화면 속 구제금융 자막과 회사 게시판에 붙은 구조조정 안내문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막연한 공포감이 전해집니다. 저는 어릴 때 왜 어른들이 매일 뉴스만 보며 한숨을 쉬었는지, 이 드라마를 통해 조금은 이해하게 된 느낌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IMF라는 과거의 위기를 그리면서도 지금의 청년 세대가 느끼는 불안과 크게 다르지 않게 그려낸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회사가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르는 상황과 환율 뉴스에 따라 하루아침에 계획이 흔들리는 현실, 노력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시스템의 벽까지 익숙한 장면이 반복됩니다.
무역전쟁 흐름
무역전쟁 흐름을 따라가는 서사는 생각보다 흥미진진합니다. 원단 몇 트럭, 헬멧 몇 컨테이너 같은 숫자와 선적 일정이 오가는 장면들이 많지만, 그 안에 회사와 직원들의 생계가 걸려 있습니다. 수출 계약을 따내기 위해 밤새 견적서를 고치고, 환율이 출렁일 때마다 이익과 손해를 계산해 보는 모습은 지금의 스타트업이나 자영업자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계약을 따내고도, 여러 일들로 계약이 무너지기도 합니다. 친구 표현준은 강태풍을 라이벌로 생각하며 어떻게든 방해하고 짓밟으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태풍은 무너지지 않고 때론 자존심을 꺾고, 때론 자존심을 내세우며 회사를 지켜갑니다.
시청자로서 제가 가장 흥미롭게 본 부분은 이 무역전쟁이 단지 기업 간 경쟁을 넘어, 주인공의 가치관과 가족의 생계를 건 선택으로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그는 단기 이익을 위해 윤리를 버리는 길과,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신뢰를 지키는 길 사이에서 여러 번 흔들리지만 결국 후자를 택하며 성장합니다. 덕분에 매회 비즈니스 스릴러의 긴장감과 휴먼 드라마의 따뜻함을 동시에 전달합니다.
마치며
태풍상사를 보면서 저는 IMF라는 거대한 사건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 청년의 성장과 한 가족의 재건, 그리고 작은 무역회사가 겪는 무역전쟁을 동시에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여러 회차를 통해 인물들이 조금씩 성장하고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 주는 과정이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드라마를 통해 옆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나를 믿어주는 이가 있다는 것과 함께 하면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적인 교훈을 주는 드라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드라마는 과거의 아픈 시간을 지나온 세대와 지금의 불안한 시대를 살고 있는 세대가 함께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아직 보시지 않으셨다면, 한 번 봐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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